이제 벌써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네요. 이에 맞춰 진지에서도 2주 전 레터가 발행되던 날, 여름을 보내주자는 취지로 여름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모임을 가졌었답니다. 그런데 1~2주 전이었나요? 앞으로 '여름' 의 길이가 한 달 늘어나고 겨울이 2~3주, 가을이 1주 정도 줄어든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아마 몇 년뒤의 진지의 9월에서는 여름을 보내주는 것보다, 여름을 맞이하는 제철 식재료를 요리모임에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저번 레터와 마찬가지로 제 식문화 경험과 식생활, 두 가지를 엮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거기에 더해서, 여름맞이 모임의 후기글까지 적어보도록 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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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지레터 한눈에 보기
🥖요리실험 식재료 소개: 까챠토레 블랙 트러플
🍶 요리이론 맛과 향의 레이어드: 쿳사
👨👩👦요리이론 요리의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다면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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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실험
식재료 소개: 까챠토레 블랙 트러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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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걸 직접 해서 먹는 것과 더불어, 그 요리를 남에게 나누는 것 역시 요리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그런 요리의 즐거움을 남들과 나누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오늘은 저희 집에서 제가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인 까챠토레 블랙트러플과, 이를 활용해서 만들었던 요리를 몇 개 소개해 드리려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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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ji___official.
까챠토레의 사진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같은 제품의 사진을 가져와서 첨부했어요 :) 이 친구는 제가 집에 처음 입주할 때부터 존재하던 친구에요. 그만큼 요리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구요. 까챠토레는 살라미 소시지의 한 종류로 사냥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소시지 사이에 군데군데 블랙트러플이 콕콕 박혀서 아주 강한 트러플 풍미를 내는 것이 이 친구의 특징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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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파인다이닝' 이라 하는 고급 레스토랑들, 파인다이닝이 아니더라도 코스로 요리가 나오는 식당들은 아뮤즈 부쉬(amuse-bouche) 로 그 코스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뮤즈 부쉬는 즐겁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진 아뮤즈와 입을 뜻하는 부쉬가 합쳐진 단어에요. 코스요리를 먹으러 가면 가장 처음 핑거푸드처럼 한 입에 집어드세요~ 하면서 나오는 그러한 아이들..? 이지요. 이 아뮤즈 부쉬는 그 식당에서 주로 쓰는 식재료, 혹은 요리기법, 혹은 셰프의 어떤 철학을 나타낸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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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에 손님들을 초대할 때면 항상 집에 들어오자마자 해주는 요리가 있어요. 미니토스트에 슬라이스한 까챠토레, 그때그때 집에 있는 치즈를 올린 뒤 꿀과 화이트 트러플 오일을 그 위에 뿌려 마무리해요. 적당한 단 맛이 살라미의 향과 트러플 향을 확 증폭시켜주죠.
이 요리는 저희 집만의 아뮤즈 부쉬랄까요..? 고수와 더불어 제가 좋아하는 향이 트러플이기 때문에, 이 핑거푸드에는 트러플의 향을 가득 담으려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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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챠토레를 가지고 만드는 요리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까르보나라에요. 다들 까르보나라라는 메뉴를 한 번쯤은 드셔 보셨거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쩌면, 조금 더 음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시라면 '까르보나라를 둘러싼 논쟁' 에 대해서도 알고 있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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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요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많이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식당에서 '까르보나라' 를 주문하면 왼쪽 사진처럼 하얀 크림에 얇은 베이컨과 양송이 버섯이 버무려진 그런 파스타를 먹을 수 있었어요. 까르보나라에 대한 이런 인식의 영향은 '까르보 불닭볶음면' 에서도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얘기하는 까르보나라는 이런 크림이 들어가지 않아요. '파마산' 이라 불리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가 쓰이지도 않구요. 베이컨도 쓰이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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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까르보나라는 면을 제외하고 다섯 가지의 재료만이 들어가요. 관찰레, 계란노른자, 페코리노 로마노, 후추죠. 관찰레는 지방이 매우 많은 돼지고기의 볼살로 만드는 햄이에요. 이 관찰레를 구워 기름을 내고, 노른자와 치즈, 후추를 섞은 소스와 함께 면을 버무리면 그 요리를 바로 까르보나라 라고 한다고 해요. 저희 집에서 만드는 까르보나라는 이 관찰레의 자리를 앞서 얘기한 까챠토레로 대체한 요리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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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ji___official
이게 저희집에서 만드는 까르보나라에요. 사실 '완전한 오리지널 까르보나라' 와도 어느정도 차이가 있어요. 원 레시피는 오일을 쓰지 않고, 관찰레의 오일만을 사용하지만, 까챠토레엔 그만큼의 기름이 없어서 올리브 오일을 함께 사용해요.
1) 파스타 면을 삶아요. 봉지에 적혀 있는 것보다 1분 정도 먼저 건져내야 나중에 소스와 섞으면서 딱 알맞게 익을 수 있어요.
2) 통후추를 프라이팬에 구워서 가루를 내요. 사실 집에서는 처음을 제외하고 종종.. 이 과정을 생략해요 :)
3) 계란 노른자와 페코리노 로마노치즈, 그리고 이 후추를 같이 섞어서 까르보나라의 소스를 만들어 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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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까챠토레를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과 함께 볶다가 불을 끄고 면을 넣고 면수를 넣으며 섞어줘요. 그리고 나서 소스를 넣고 면을 휘휘 섞어 주면 되어요.
사실 저 4번 과정이 정말 중요해요. 너무 센 열에서 면에, 프라이팬에 소스를 넣으면 계란 노른자가 바로 익어서 스크램블이 되어 버리더라구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 :( 노른자는 60도부터 익기 시작한다니, 충분히 기다렸다 섞어 주세요..
아니면, 소스를 미리 만들어 볼에 담아 두고 기름을 달궈서 갓 건진 따끈한 면이랑 같이 넣어버리는 것도 좋더라구요.! 이렇게 하면 훨씬 더 쉽게 (스크램블을 구경하지 않고) 소스와 면을 잘 섞어줄 수 있었어요 :) 한 번 드셔보셔요.! 눅진한 풍미가 정말 일품이랍니다. 까챠토레 대신 짭쪼름한 소시지나 햄 종류를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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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탈리아에서는 최근에 이 '까르보나라' 를 둘러싸고 되게 핫한 언쟁이 생기고 있어요. '오리지널 까르보나라' 가 사실은 미국인이 개발한 미국의 요리다..! 하는 그런 주장이죠.
이 주장에 따르면 1954년에 발행된 쿠치나 이탈리아나에서 처음으로 까르보나라의 레시피가 실려 있다고 해요. 그리고 거기 실린 레시피는 앞서 얘기한 까르보나라와 매우 다르다..! 는 얘기죠. 심지어 이 요리는 미국인에 의해 처음 개발됐다 이런 얘기도 함께요.
전통에 매우 민감한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매우 불편한 이야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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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고 최근에 '떡볶이' 를 처음 만드셨던 분의 인터뷰를 봤던 게 생각났어요. 흔히 말하는 떡볶이는, 고추장을 넣고 빨갛게 떡을 졸여내는 요리는 사실 '궁중떡볶이' 로 대표되는 간장떡볶이와 완전히 다른 요리라고 해요.
떡볶이를 처음 개발한 '마복림'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춘장에 떡을 곁들여 먹던게 맛이 좋아, 춘장보다 저렴한 고추장을 떡에 곁들여 만든 게 최초의 떡볶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짜장떡볶이' 는 떡볶이의 새로운 배리에이션이 아닌, 오리지널의 그 맛에 더 가까워진 떡볶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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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 볼 음식점은 연희동의 쿳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점이에요 :) 쿳사는 호주식 브런치 레스토랑이에요. 브런치라고는 하지만, 각각의 메뉴들을 쿳사만의 스타일로 어레인지해서 선보이는 게 정말 마음에 드는.. 그런 곳이라고나 할까요! 거의 달에 한 번씩은 쿳사를 방문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쿳사의 메뉴들 중 마음에 들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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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죠..! 바로 새우크랩 토스타다에요. 토스타다는 구운 또띠야를 베이스로 재료들을 올려내는 멕시코 음식이에요. 마치 '타코' 같은 느낌이랄까요.
쿳사의 토스타다는 구운 또띠야라는 그런 딱딱한 식감보다는, 포슬포슬한 옥수수 빵..? 느낌의 베이스를 가지고 있어요.
이 베이스 사이사이에 생 홍게살, 구운 새우를 버무려 채우고 위에는 수란을 올려요. 그리고 딜, 타임 같은 다양한 허브와 양파 후레이크를 위에 올려 장식하죠. 재료만 들어도 너무 향기롭게 느껴지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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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재료들을 잘라서 한 입에 딱 넣으면 그 느낌은 너무 행복해요. 새우, 홍게는 다 전체적인 맛을 덮지 않는 은은한 감칠맛을 내는 단백질이죠. 이 둘의 감칠맛이 베이스로 깔리고요, 노른자의 고소한 맛이 잠깐 들렸다가 날치알이 톡톡 튀면서 잠시 시선을 환기시켜요. 그 사이사이마다 딜, 타임, 민트들이 향긋하게 피어올라요. 뭐랄까.. 한 번에 터지지 않고 흰 색부터 진한 초록색까지 그라데이션으로 터져가는 색깔 폭죽 같은.. 그런 맛이에요. 저는 이렇게 다채로운 향이 팍팍 튀어 오르는 음식들이 좋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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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리는 쿳사의 여름 시그니쳐였던 무화과 크로스티니에요. 크로스티니는 브루스게타랑 비슷한 애피타이저 메뉴에요. 둘 다 빵을 잘라서 구운 뒤, 그 위에 재료들을 올려서 서브하는 요리에요. 차이점이 있다면, 브루스게타는 빵에 오일을 바른다는 점.? 그리고 크로스티니는 빵을 얇게 저미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이번 여름에 유행한 식재료를 몇 개 꼽아보자면 그 중 하나가 무화과라고 생각해요. 카페들 마다 '무화과 얼그레이 케이크' '무화과 판나코타' 같은 무화과를 내세우는 메뉴들을 많이 서브하고, 와인 바들에서도 무화과를 사용하는 메뉴가 되게 자주 눈에 띄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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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는 특유의 풀 향이 매력적인 과일이죠. 보통 견과류, 그리고 치즈랑 곁들여 먹는 조합이 많더라구요? 쿳사의 크로스티니도 비슷한 조합으로 완성된 요리였어요 :) 고르곤졸라 치즈로 만든 크림, 견과류, 베이컨과 꿀이 얹힌 요리에요.
어찌 보면 저 위의 까챠토레 블랙트러플의 아뮤즈 부쉬의 맛 조합이 녹아있는 듯하지 않나요..? 쿰쿰한 치즈, 육향있는 고기, 꿀..! 물론 거기에 무화과의 가벼운 달달함과 견과류의 고소함, 그리고 치커리의 씁쓸함이 살포시 더해졌지만요.
쿳사는 이렇게 섬세한 향의 레이어드가 재밌는 곳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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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모임 후기
요리의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다면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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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잊고 있었던 것들도 있었거든요. 음식을 좋아했을 때 음식을 생각하는 그런 시간들. 그런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저도 최강록님을 좋아해서 흑백요리사 클립으로 조금씩 챙겨봤었는데요, 최강록님이 인터뷰 중 한 이 말이 인상 깊었어요. 이번에 오랜만에 가진 요리모임이 저한테는 저런 시간이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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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 '계절밥상 - 여름편'을 주제로 요리모임을 했었어요. (궁금하다면 진지 인스타 계정으로^0^) 납작하게 눌러져야 하는 감자가 부서져버리기도 하고, 물을 너무 많이 넣은 탓에 밥이 질어지기도 하고 마냥 순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어요.
부서진 감자로 새로운 감자스프를 만들었는데 준비한 요리 버금가게 맛있기도 하고, 걱정했던 밥을 다들 맛있게 먹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과정들이 겹쳐지며 어느새 걱정 가득했던 것들은 싹 가시고 이 순간 같이 만드는 즐거운 시간들만 남았더라고요.
한창 이것저것 시도하고 완성해내는 재미로 요리를 했는데, 마음에 여유가 부족해져서인지 맛과 걸린 시간들에만 집착하느라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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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요즘 혹시 요리가 재미가 없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함께 해보는 것 어떠신가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도 좋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면 무료 개방되어 있는 공유주방을 찾아봐도 좋고요. 혹시 같이 할 사람이 없다면 프로그램을 찾아가봐도 좋고요!
(예를 들어 진지라던가 진지라던가)
소소하게 정보를 공유해보자면 제가 애용하는 용산구의 '지음'이란 청년공간에서 2회차로 저녁을 같이 해먹는 요리 소모임을 운영하더라고요. 관심있으시면 이런 곳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URL)
모쪼록 가끔은 재미없어 했다가 다시 재미를 찾고자 사람들과 함께도 했다가하며 그때그때 즐거운 시간들 보내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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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레터를 만드는 사람들 👩🍳👨🍳
지니) 뿌린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사람들을 초대하고 같이 나누는 것에 익숙해지면 저의 시그니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네요:> 연희동 가까운데 저런 근사한 식당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가을이 가기 전에 무화과요리도 한 번 먹어야 하는데, 여러분도 무화과 즐겨드시나요?
뿌린) 다들 흑백요리사 즐겁게 보고 계신가요.? 다음 레터를 쓸 때는 흑백요리사가 완결이 나겠네요. 최강록 씨의 식당을 두 번 방문해 보았는데요, 한 번 그 후기글을 써볼까 생각중이에요. 분량이 어마어마해지려나요 (하하). 가을이 와서 그런지 하늘이 정말 예쁘네요. 다들 얼마 없는 가을을 잘 만끽하시길..!
별별) 저는 저번에 뿌린님 집에 초대받아서 카챠토레 토스트와 이것저것 뿌린님이 해주시는 코스요리 먹어봤는데 간단하면서도 맛있어서 좋더라구요. 지금은 기숙사에 사는데 괜히 자취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기는 하루였습니다. 저번 요리모임에서 부서진 감자로 만들어진 감자스프는 제가 만들었는데 사실 남는 감자로 매쉬드포테이토를 해먹으려다 생크림을 너무 많이 부어서 다 졸이지 못하고 식탁 위에 내놓게 되었던 요리였어요. 의외로 맛있어서 상당히 놀랐답니다. 요리할때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사건에서 오는 재미가 요리를 더 재밌게 만드는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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