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짧다면 짧은 여름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진지레터입니다. 글을 시작하기 이전에 잠깐 소개해드릴 진지레터의 변경점이 있어요. 이번 레터부터 이전에 레터를 작성하던 지니님 대신 저 뿌린이 진지레터를 도맡아서 쓰게 되었어요. 예전에 몇 번 에피타이저를 소개하는 글과 바캉스 특집으로 인사드린 적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실련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앞으로 글의 스타일이 조금씩은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을 미리 이야기 드리고 싶네요.
저는 한 달 전 1년 넘게 몸을 누이던 하숙집을 떠나 인생 첫 자취를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제 부엌이 생겼어요. 저에게 있어서 부엌은 실험실인데요, 레시피를 보는 것보다 부엌에 있는 식재료들을, 장보러 가서 있는 재료들을 보면서 어떻게 조합하면 맛있는 것이 나올 지 생각해보고 그대로 움직여 보고 하는 듯 해요. 그것을 지향하기도 하구요. 앞으로의 진지레터는 저의 요리실험...과 그 기록 그리고 집 밖에서 만났던 식문화 경험들, 요리이론을 이야기해볼까 해요. 조금 더 에세이.. 스러워 지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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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지레터 한눈에 보기
🥖요리실험 추석을 맞이하며
🍶 요리이론 '초록빛' 국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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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셨나요? 저도 추석을 맞이하여 독립하고 처음으로 본가에 다시 다녀왔어요. 생각해보녀 원래 독립하기 전에는 본가 부엌에 한 번도 제대로 서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연휴에는 본가 부엌에 서서 어머니를 도와 가족들이 먹을 식사를 한 번 만들어 보았어요. 오히려 자취를 하면서도 한식을 요리해본 경험은 적었는데, 덕분에 한식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해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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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ji___official.
명절음식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요리죠. 사실 '전' 이라고는 하지만 육전, 생선전을 제외하면 집집마다 명절에 부치는 전의 종류가 다른 것 같기도 해요. 저희 집이 많이 간소화된 듯 하기도 하구요.
예전에 친가에 모여 다같이 차례를 지낼 때 큰아버지네 집에서는 특이하게 새우튀김을 명절 전의 한 종류로 올리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 차례 준비하는 걸 기다리며 그 새우 튀김을 주섬주섬 줏어먹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 보면 큰아버지네 집에서는 두부전, 동그랑땡, 연근전 등 정말 다양한 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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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엔 육전, 애호박전, 생선전을 부쳐 보았어요. 그치만 부치는 과정이 사진에 없네요.. 육전에는 얇게 저민 한우 설깃살을 사용했는데, 설깃살은 소의 뒷다리 바깥쪽에 있는 부위를 부르다고 해요. 사람으로 치면 허벅지 아래 쪽....? 이 아닐까요. 허벅지 하면 연상되는 그런 이미지 (근육질,, 두꺼움,,?) 와 걸맞게 근육이 잘 발달된 그런 부위라고 해요. 근육이 잘 발달된 (a.k.a. 질긴, 육향이 강한) 부위들은 통째로 구워먹지 않고 삶거나, 잘게 슬라이스해서 질긴 식감을 덜어내어 먹는다는 특징이 있어요. 가장 큰 예시로는 차돌박이. 를 들 수 있겠네요.
생선전은 물기를 꾹 쥐어짜낸 대구살을 사용했어요. 고기요리에서 수분기를 제거하는 건 마이야르 반응을 잘 일으키기 위해서 이지만, 여기선 전을 다 굽고 나서 생선의 수분기 때문에 전이 눅눅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 듯 해요.
이후 과정은 다들 알고 있을 그런 과정의 연속이에요.
1) 소금 후추로 고기와 생선을 밑간하고,
2) 애호박은 조금 두껍게 약 0.5mm 두께로 슬라이스 하고,
3) 재료들을 계란물 부침가루 순서로 묻혀내어
4) 기름을 두른 중약불의 프라이팬에 구워내는 것이죠.
근데 이 과정을 보면 뭔가 기름의 양, 불의 세기, 튀김 가루의 여부만 조금 바뀌면 마치 '치킨' 의 요리법과 비슷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치킨... 전.... 어쩌면 부침개..? 사이의 mash up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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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ji___official.
생각보다 오이무침은 정말 간단한 요리였어요.
1) 굵은 소금으로 오이를 박박 닦아 준다. 이 과정을 거쳐야 오이의 쓴 맛이 사라지더라구요.
2) 오이를 세로로 4등분 한다. ( 가운데 씨앗은 제거 )
3) 오이를 5cm 정도 길이로 썰어 소금을 뿌려 체에 받쳐 절여 둔다.
4) 얇게 썬 양파와 함께 양념장에 버무린다.
오이 무침을 생각하면 어떤 맛이 입안에 맴도나요? 저는 음... 살짝 짭쪼름하면서 새콤함 달콤함..? 을 생각하면서 양념장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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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맛 그대로, 간장, 액젓, 고춧가루, 효소를 넣으면 양념장이 완성되어요. 이후에 갈치 조림을 하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한식의 양념은 뭔가 되게 직관적인 것 같아요. 감칠맛을 원하면 액젓 / 직관적인 짠맛을 원하면 소금 / 끝맛이 있는 짠맛을 원하면 간장! 이런 느낌으로 한식에 도전한다면 어떤 요리를 하든 양념장을 배합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자신감..? 을 얻어볼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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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ji___official.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본가하면 생각나는 시그니쳐 음식이 있나요? 저희 어머니의 시그니쳐는 바로 갈치조림이에요. 제주도에서 먹어본 비싼 갈치조림보다, 그 어떤 갈치조림보다 본가에서 먹는 갈치조림이 맛있더라구요. 이 글을 쓰게 된 데는 어머니의 갈치조림 레시피를 인터넷 어딘가에 보관해두고 싶어서의 이유도 있어요.
갈치는 우선 칼로 비늘을 긁어서 준비해요. 은색 빛깔은 갈치의 시그니쳐 색인데요, 이 반짝이는 비늘에는 구아닌 성분이 들어 있어서 긁어내지 않으면 비린 맛과 소화불량의 원인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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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갈치가 아니더라도 생선 조림 요리에서 감자, 무는 맛에 대한 인상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생선의 감칠맛이 녹아나온 국물과, 그 국물을 잔뜩 머금은 탄수화물..! 저는 개인적으로 바스라지는 무의 식감보다 포슬포슬한 감자의 식감을 더 선호하는 듯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이 있듯, 요리 역시 레시피와 식재료에 대해 아는 만큼 자유로워지는 듯 해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유지한 채 전혀 다른 요리를 창조하기도 하구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할 기회가 있겠죠? 아마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한 번 더 적어보지 않을까 하네요.
오늘의 갈치조림에서는 이전에 사용되지 않던 고구마순을 사용했어요. 고구마순은 음.. 얇은 가지와 비슷한 식감을 가졌어요. Juicy한 속과 이를 감싸고 있는 흐물흐물한, 그렇지만 형태를 잃지는 않는 얇은 막의 식감..? 그래서 감자, 무와 어우러져 생선조림의 감칠맛을 그 속에 담아내기에 좋은 특징을 가진 식재료죠. 사실 이날 갈치조림에 고구마순이 들어간 이유는 그저 외할아버지가 키우던 고구마를 수확하시며 고구마 줄기를 보내주셔서 집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기존의 식재료와 유사한 역할을 하도록 자연스럽게 레시피를 바꿔가는 과정..! 저는 이 과정이 요리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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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자는 1.5cm 정도 두께로 썰어 줘요. 무는 마구 썰어줘요. 사선으로 세우고 돌려가면서 써는 거죠. 이렇게 하면 무의 표면적이 넓어져서 더 국물이 잘 스며들도록 할 수 있고, 동시에 무의 맛을 잘 녹여낼 수 있어요.
2) 고구마순을 냄비 바닥에 깔고 무와 감자를 그 위에 올려요. 무와 감자가 적당히 잠길 정도로 자작하게 물을 부어주고 한 번 무와 감자가 익을 때까지 끓여내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 감자와 갈치의 익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또, 무의 맛을 미리 물에 우러내어 갈치에 무의 단맛을 입히기 위함도 있죠.
3) 손질한 갈치 토막을 무, 감자 위에 올려 줘요. 그리고 양념장을 갈치 위에 덮어 주고 그 위에 양파를 올려 그대로 끓여내요.
<양념장>
갈치조림 하면 어떤 맛이 떠오르나요? 아마 생선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 다주 약간의 단 맛, 짠 맛, 고추가루 정도 아닐까요..? 양념장의 레시피도 똑같아요. 다진 마늘, 고추가루, 까나리액젓, 간장, 효소, 생강청, 굴소스가 들어가요.
다진 마늘과 생강청은 생선의 비린 맛을 잡아주기 위한 재료에요. 생강청과 효소, 굴소스는 감칠맛과 더불어 약간의 단 맛을 더해주기 위한 재료이구요. 까나리 액젓과 간장은 감칠맛과 더불어 짠 맛을 더해줘요. 고추가루는 매콤한 맛을 내는 것도 있지만 양념장의 질감을 결정해 주어요.
결국 감칠맛, 짠맛, 단맛을 내는 역할을 위해 집에 있는 향신료를 조합하는 것이죠. 생강청과 효소 대신 생강과 매실액기스가 들어갈 수도 있겠죠? 설탕, 당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알룰로스로 단 맛을 대체할 수도 있을 거구요. 흔한 재료가 없지만 가공품으로 감칠맛을 내고 싶다면 미원이나 다시다를 사용할 수도 있을 거에요. 음식을 맛의 형태소로 분석하는 것..! 앞으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음식을 구성하는 형태소를 저장해 나가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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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섹션에서는 제가 돌아다니며 먹어보았던 음식들 중 재밌었던 시도나 도전이 가미된 음식들을 소개할 생각이에요. 가장 먼저 오늘 소개해 볼 음식점은 안국역에 위치한 안암이에요. 예전에 후기 글에서 짧막하게 적은 적도 있지만, 저는 많고 많은 식재료들 중에 고수를 제일 좋아해요. 안암을 소개해드리는 이유도...! 메인 디쉬가 고수를 활용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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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사이드 디쉬부터 한 번 소개해 보겠어요. 바로 냉제육 이랍니다. 냉제육은 몇 달 전부터 유튜브에서 정호영 셰프님이 소개하는 걸 통해서 그 존재를 알게 됐어요. 보통 '제육' 이라 불리는 요리는 붉은 색인 경우가 많아요. '제육볶음' 에서 볶음이 생략되어 불리는 요리죠. 냉면집에 가면 이렇게 냉제육이라 불리는 '제육' 메뉴를 찾아볼 수 있어요. 평양냉면 집들에서 주로 메뉴에 올라가 있다고 하는데, 전 아직 평양냉면을 먹어보지 못해서 기대만 해 보고 있어요 :)
저는 아직 먹어보지 못해서 검색을 해 보면 냉제육을 내어주는 곳은 보통 새우젓, 김치 등을 곁들여 먹더라구요. 하지만 안암의 제육은 뭐가 좀 달라 보이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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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의 제육은 옆에 라임이 올라가 있어요. 아래에는 샬롯과 고수, 레몬그라스 오일이 섞여 있구요. 이 정도만 봐도 어느 정도 맛이 상상이 가지 않나요? 음... 정말 상큼하고 향긋한 고기 요리였어요. 새우젓을 곁들여 먹는 냉 제육은 '사이드디쉬' 의 성향이 강하다면 안암의 냉제육은 '애피타이저' 라고 부를 것 같은 그런 뉘앙스를 풍겨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냉제육을 먹으면서 멕시칸의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고수와 샬롯, 오일, 라임. 전부 살사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들이니깐요. 또, 아주 얇게 슬라이스된 고기에 속재료들을 감싸 먹는게 마치 또띠야에 속재료를 넣고 타코를 만들어 먹는 듯한 그런 느낌을 줬어요. 셰프님이 어떻게 이 요리를 만들게 되었을 지는 모르지만, 만약 제가 이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면 음... '누드타코' 를 형상화하면서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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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의 시그니쳐인 돼지국밥이에요. 돼지국밥에 고수라니..! 상상이 가시나요? 비쥬얼은 이렇게 생겼어요. 보시면 고수 말고도 둥둥 떠있는 녹색의 기름이 일반적인 국밥과 다른 걸 볼 수 있어요. 저 기름은 케일의 맛을 뽑아낸 케일 오일이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돼지국밥과 다르게, 안암의 국밥은 정말 맑아요. 부산에도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됐던 '합천 돼지국밥' 이란 곳이 이와 비슷한 맑은 국밥을 파는 걸로 유명하다고 하죠. 저는 아직 먹어보진 못 했지만 나중에 부산에 가면 먹어보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돼지의 꼬릿꼬릿한 향과 맛이 진한 돼지국밥의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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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런 맑은 국밥들은 그 꼬릿한 향과 맛을 얼마나 걷어내느냐 가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국밥을 아주 진하게 감싸던 향이 사라지면, 사실 그 자리에 남는건 '깔끔한 감칠맛'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안암에서 먹어본 돼지국밥은 꼬릿한 향을 지워 깔끔한 감칠맛을 선명히 하는 데 더해서, 케일오일과 고수를 통해 어딘가 밋밋해질 수 있는 감칠맛을 푸릇푸릇한 향으로 서포트해 주는 그런 요리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시도는 베트남의 쌀국수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쌀국수도 매우 맑은 고기육수를 사용하고, 고수를 올려 향을 더해 주니깐요 :) 사실 탄수화물만 쌀국수에서 쌀로 만든 밥으로 바뀐 것이지 나머지는 거의 쌀국수와 유사하지 않나요?
그러면 여기서 생각을 더 얹어서, 나중에 '맑은 돼지국밥' 을 만들고자 한다면, 맑은 국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쌀국수에 더해지는 다양한 변경점들. (음... 예를 들면 똠얌 쌀국수의 똠얌 향을 더해 나간다거나 하는 게 있겠네요. 레몬그라스 오일을 여기에 사용하고 토마토 향을 더한다든가?) 을 추가해 보면서 재밌는 변형을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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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늘의 요리 이론 및 실험 을 마무리해 볼게요..! 이름은 바뀔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제가 해먹어본 요리와 사먹어본 요리.! 이렇게 섹션을 나눠서 제 경험을, 그리고 주절주절 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해요. 그러면, 다음 레터에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고마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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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레터를 만드는 사람들 👩🍳👨🍳
지니) 요리할 때 주로 레시피 보고 하라는대로 따라만 했는데. 이번 레터를 읽으며 각각의 재료가 과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뭔가 원리를 이해하니 응용도 쉬울 것 같네요! 앞으로도 아주 기대가됩니다 ㅎㅎ
뿌린) 아직 앞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은 음식 경험들이 한가득...! 이에요. 벌써 다음 레터 쓰는게 기다려 지네요 :) 여러분도 즐거운 식문화 경험을 하셔요! 음식 형태소 분석.!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부터 하나하나 해체해 보시는 건 어떤가요 ?
별별) ㅋㅋㅋㅋ 뿌린 교수님이 진도를 빨리 나가고 싶으신지 이론에 실험까지 한번에 하시네요. 앞으로 교수님이 써나가실 강의가 어떨지 너무 기대됩니다. 하지만 국밥에도 고수를 넣어버리는 기행 때문에 강의평 별점은 하나 빼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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